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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3. 02.

무비위크 이벤트

대학로 나무와 물, 오후 8시


■ 줄거리

햄릿 _“내 사랑 고백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거죠. ”
목련이 피는 계절의 어느 연극 연습실, <햄릿> 공연을 앞두고 '햄릿'과 '오필리어' 역을 맡은 두 배우는 리허설을 한다. 이 곳에서 '햄릿'은 극중 상황을 빌어 '오필리어'에게 숨겨온 사랑을 고백해보지만, 오필리어는 그 마음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필리어 _“금 밟지 말아요. 내 자리로 넘어오지 말라구요. ”
'오필리어'는 로미오의 죽음 때문에 자신의 청춘이 아름답다고 믿는다 오필리어는 첫사랑 '로미오'를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리'는 과거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할 때 '로미오'가 '오필리어'에게 지어준 애칭이다.

로미오 _“바람이 불면 하늘을 날아, 바람이 불면 내가 너 만진거다. ”
세월은 흐르고 사랑하던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녀는 오필리어가 아닌 줄리엣으로 남아있다. 말하자면 '햄릿'은 '줄리엣'으로 존재하는 '오필리어'가 빨리 자신의 상대역인 '오필리어'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줄리엣 _“이쁘고 착한 애들은 다 죽여 버릴거야”
'오필리어'는 연습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집이 멀어 가기가 귀찮다며 '줄리엣'의 집을 찾아온다. ‘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할 한 번 못해보고 만년 조연 신세로 지내고 있는 서글픈 젊음이다.

오필리어와 줄리엣은 자신들의 청춘을 빙산이 손에 잡힐 듯이 보여 떠났는데, 보이는 것과 달리 목적지는 멀기만 한 채 망망대해 가운데 오도 가도 못하는 유람선에 이 때 '햄릿'이 낮에 못한 연습을 핑계로 '오필리어'가 있는 '줄리엣'의 집을 방문한다. 이어서 '햄릿'과 '오필리어'가 연극 <햄릿>의 한 장면을 연습하던 중에 '오필리어'는 죽은 '로미오'와 조우하는데……… 과연 '햄릿'의 사랑을 '오필리어'가 승낙할지는 미지수이다.


■ 연극을 보고나서...

공연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여러 공연예매 싸이트들에서 접한 짤막한 줄거리와 당일 공연장에서 구입한 프로그램에 실린 줄거리 뿐이었다.

프로그램에 실린 줄거리엔 배역들의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영화의 가닥(?)을 잡는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연극 넘 어려운 영화 아냐?' 라는 거부감 마저 간직하게 되어 버린채....

허나 연극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의 거부감은 말끔히 해소 되었다.

"우유 드세요~!! 우유 드실분~~"이라는 대사와 함께 경쾌한 우유송이 시작되고, 결코 따라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인형극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귀에 익은 동요.. 그러나 그 동요 역시 평소 생각지 않았던걸 던져주는 하나의 유쾌한 숙제라고나 할까?

이 공연은 분명 연극이라 명명되어 있었지만 극을 경험하기 전엔 어울리지 않은 재료들로 이루어진 아직 맛 보지 않은 섞어찌개라면.. 일단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 어울리지 않던 재료들이 서로 훌륭하게 어울려 잊혀지지 않는 맛을 내는 그런 공연이 됨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햄릿에 그렇게 많은 주옥같은 대사들이 있었던가?

햄릿하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대사밖에는 별 느낌이나 감흥있는 대사들이 있었던건 아니었던것 같은데.. 어쩜 그렇게 주옥같은 대사들이 속사포 처럼 쏟아져 나오는지...

한마디 한마디 그가 내 뱉을 때마다 그의 말을 놓칠세라 귀 크게 열고 눈 크게 뜨고... 극에 몰입할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의 카리스마가 그의 전반적인 흐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고...

지금은 오필리어 이지만.. 아직 줄리엣에 머물수 밖에 없는 가녀린 그녀... 줄리...

"금 밟지 말아요~ 내 자리로 넘어오지 말아요..."라고 말하며 그는 영원한 줄리엣에 머물고자 한다.

허나 그건 그녀 자신역시 그 금을 밟고 다른 사람의 자리로 넘어가 버릴 자신에 대한 단단한 마음의 문을 채우는건 아니었을까?

이 극에서는 <줄리에게 박수를>보내고 있지만 내가 정녕 박수를 보내고 싶은 여인은 따로 있었으니....

항상 줄리엣의 대역을 한다거나 유모역의 조연에 머물수 밖에 없는 그녀...

난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극에서 맛을 내는 양념같은 역할을 소화해 낸다.

비록 극 안에서 맡은 배역이라고는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아주는 조연의 역에 불과하지만 이 극에서 만큼은 아주 맛깔나는 연기를 소화해 내는 그녀역시.. 주연이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그녀의 집에서 삶의 찌든 모습을 보여주는, 나뒹구는 소주병들과 커다란 인형을 끌어안고 대사를 치는 모습은 정말이지....

"여긴 내집이다! 내가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내가 대사를 많이 쳐야 한다! "라는 처절한 대사까지 치지 않아도 그녀는 이 극에서 빛나는 주연이었으며,

"박수들 쳐라~~!!"라는 대사를 하지 않아도 박수가 절로 나오는 시원스런 연기였다...

관객을 극으로 몰입시키는건 분명 그 극이 가지는 커다란 숙제일 것이다. 허나 우린 그 숙제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극을 만나는 일이란 쉬운일이 아니란걸 이미 알고 있기에...

이미 그 숙제를 훌륭히 끝낸 <줄리에게 박수를> 이 연극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건지도 모르겠다..

<햄릿><로미오와 줄리엣>을 다시한번 보고 그 주옥같은 대사를 다시 곱씹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준 이 연극에 감사하며,

극 내내 말하고자 하는 어중간한 모든사람들.. 아니 그 어중간한 사람중 한사람인 내게도 스스로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이름없는 꽃이라 하여 그 의미가 없는건 아니다...

내가 지금 어중간 하다 하여.. 나에게 머물러 있는건 아니다... 단지.. 아직 향기를 내는 나의 이름을 못 찾았을 뿐이다...


■ 대사들...

오, 오필리어~ 어제 길을 지나던 중이었소.
길가 담벼락 너머로 막 피어나던 목련꽃이 내게 말을 걸었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내가 아팠던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오. 다만 목련이 날 보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 뿐.
햇살에 눈을 찌푸린 내가 찌푸린 얼굴로 목련을 올려다보았을 때,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목련은 막 꽃봉오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소.
세상에 이 세상에 꽃을 피워 내려 안간힘을 쓰는 목련 보다 더 아픈 것이 어디 있단 말이요.
근데 날더러는 아프지 마라 하더이다. 자기가 더 아프면서...
목련이 내게 주는게 그게 무엇이요.
그 아픈 목련이 내게 하는 걱정의 말이 그게 도대체 무엇 이건데 내 마음이 이렇게 따뜻해지더냔 말이오.
오. 오필리어 숲의 여신이여. 아프지 말아요, 아프지 말아요, 아프지 말아요.

인생은 먼 항해길과도 같다고 합니다.
그 항해가 끝나가고 코앞으로 선착장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항해 중에 겪은 수많은 일들을 마치 무슨 전쟁터에서 겪은 무용담얘기 하듯이 쏟아 좋을 테지요.
폭풍을 만났네. 상어떼를 만났네. 뭐. 갈매기랑 탱고를 췄다는 사람, 물개랑 닭싸움을 했다는 사람....
신기한 것은 배가 드디어 선착장에 닿고 그 승객들의 발이 지상에 내 닫는 순간부터 항해 중 에 겪었던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이. 무서운 기억 신기한 기억이 그게 모두 추억이 된다는 겁니 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단단하지도 물컹하지도 않은 추억....

나는 항상 내가 어중간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중간한 키. 어중간한 얼굴, 어중간한 몸, 학교 때는 어중간한 성적에 연기는 또 어중간한 연기, 의식주도 그저 중간은 가는 중산층. 거기다가 사랑마저도 그냥 어중간하면 나 너무 비참하지 않나요..

저는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낼 겁니다. 이름 없는 꽃은 정말 이름 없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찾아 내지 못했을 뿐. 그 꽃들도 분명 향기를 뿜고 벌 나비를 유혹했을 테니까요. 아직 제 이름을 찾지 못한 모든 꽃 들의 향기가 오늘 하루 종일 코끝을 찔러댔습니다. 향기에 취해서 제일 먼저, 제가 있는 자리 가 어딘지 확인해 주고 있는 이 줄리에게… 줄리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냅니다.
Posted by 달빛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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